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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ique - 설계/디자인

 

디자인 DB 해외리포트의 Nils Holger Moormann의 리포트 입니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는 요즘, 아쉬울 수밖에 없는 때이지만 그래도 SNS를 통해 알 수 있는 한국 지인들의 기분이 좋은 이유는 긴 추석 연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 기간 내의 유럽이나 동남아행 항공권이 매진 사례를 보인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에게 휴식이 필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생각하는 휴가, 휴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 동경해오던 어떤 것들에 대한 도전을 떠올리는 사람도, 가까운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의미 있는 휴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집에 틀어박혀서 양념 반, 프라이드 반과 함께 밀린 드라마를 내려받아 보는 단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전의 기억이 남아있는 분들이라면 알만한 모 통신사 광고에서 배우 한석규 씨가 말하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멘트의 의미와 닿아있는 ‘단절’ 말이다.

지난 리포트에 이어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에 관한 두 번째 리포트이다. 무어만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대부분 생산이 그와 그의 회사가 위치한 바이에른 남부 지방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알프스 산자락의 아샤우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마치 아샤우 전체가 그의 작은 성인 것처럼, 그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처럼 무어만은 아샤우를 그리고 아샤우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의 자연을 사랑한다. 그가 설립한 회사 NHM의 웹사이트 혹은 수많은 그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서 그의 일상을 살펴보면 어딘지 모르게 아주 평화롭다. 대부분의 디자인 산업이,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대도시를 무대로 바쁘게 돌아가며 이뤄지는 것과는 조금 대조적이다. 물론 ‘물가가 싸서’라는 현실적이고 반전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관찰할 수 있는 바로는 그의 매일은 아샤우 촌구석에서 물 흐르듯이 천천히 지나가고 휴식하듯 평화롭다.

그런 그가 휴식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려 시작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겠다. 그가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매일의 휴식 같은 삶을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Berge”가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가장 간단히 소개하면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인데 무어만은 이 숙박시설의 이름을 “Berge”라고 지었다. 무어만의 인터뷰를 보면(40분가량의 그의 인터뷰를 리포트 마지막에 소개하겠다.) 그는 대부분 영감을 문학에서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머무는 공간에는 수많은 책이 수납되어있다. 또한, 특이한 점은 NHM 내부의 계단과 벽에는 많은 명언이나 좋은 글귀들이 적혀있는데 실제로 무어만은 이러한 글귀들을 가까이하기를 좋아하고, 작품의 제목 역시 글귀에서 영감을 받은 문장이나 혹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독일어 “Berge”는 산(Mountain)의 복수형이고 “Herberge”는 호스텔(Hostel)과 같은 말인데 이런 중의적인 뜻을 담은 호스텔 Berge에서도 무어만의 특이한 작명(?)법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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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d Berge (Image ⓒ Nils Holger Moormann) 무어만의 Berge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기 전, 위 사진 속의 건물은 오랜 시간을 숙박시설로 사용되다가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다. 무어만의 NHM 가구들을 위한 배송 창고로 사용하려 사들인 이 건물은 심사숙고 끝에 원래의 계획에서 선회하여 새로운 숙박시설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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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by Nils Holger Moormann (Image ⓒ Nils Holger Moormann) 새롭게 태어난 Berge의 외관. 본래 설계, 시공된 기본 틀을 최대한 헤치지 않는 선에서 무어만의 색채로 재해석 되었다. 넓은 앞마당을 향해 탁 트인 창을 내었고, 지붕 층의 발코니에서는 알프스에 둘러싸인 아샤우의 멋진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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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공동식당 (Image ⓒ Nils Holger Moormann) 지상 층에 자리 잡은 넓은 공동식당. Berge에 있는 대부분 방이 따로 주방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여행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의 만나보라는 의미로 이렇게 큰 공간을 식당에 투자했다.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간에는 대규모의 인원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을 많은 식탁과 의자들이 그 반대편에는 넓은 조리대와 작은 아궁이와 같은 벽난로가 있다. 원목과 무쇠의 조합으로 가공되지 않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무어만의 디자인 철학과 맞닿아있는 조용하고 따뜻한 산장의 느낌이다. 사진 속의 공간에 가만히 다양한 외모와 성격의 사람들을 그려 넣어 보면 나 역시 그 공간 속에 동화되어 멀리 떠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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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Apartment 1 (Image ⓒ Nils Holger Moormann) 공동식당과 비슷한 느낌의 방이다. 복층의 형태로 지붕 층에는 침실이, 연결된 아래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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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Apartment 2 (Image ⓒ Nils Holger Moormann) 예전의 바닥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에 가공처리 하지 않은 나무를 이용한 붙박이 가구 스타일의 침대와 수납장으로 이루어진 방. 왠지 이 방안에서는 밤새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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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Apartment 3 (Image ⓒ Nils Holger Moormann) 리모델링하기 전의 건물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구조물들을 그대로 살려낸 다양한 방들. 거친 원목의 느낌과 어두운 가구의 조화가 역시 무어만이 추구하는 그대로의 느낌이다. 지붕에 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알프스의 태양 빛이 공간의 입체감을 완성해준다.

 

 

 

▲ Berge / Apartment 4 (Image ⓒ Nils Holger Moormann) 책을 좋아하는 무어만의 취향이 그대로 녹아있는 서재 스타일의 방. 총 16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 Berge의 모든 객실에는 곳곳마다 책이 꽂혀있는데, 인터뷰를 통해 무어만이 하는 말은 이 놀라운 공간에 방점을 찍는다. 놀랍게도 Berge에는 인터넷이 없다. 산속이라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예약과정에서 많은 투숙객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무어만은 Berge를 계획하던 당시의 원칙을 바꿀 의지가 없다고 한다. 리포트의 도입부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라는 광고 카피가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무어만은 Berge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정말 편안히 쉬다가 돌아가기를 권하고 있다. 끊기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에 오히려 중독되어 꺼버리기를 주저하는 현대인들에게 그 흔하고 편한 전화도 인터넷도 제공하지 않고 반강제로 자연을 바라보고 책을 읽다가 가라고 말한다. 숙박시설을 통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단다. 많은 사람이 Berge를 찾아 단절된 휴식을 통해 인터넷에서보다 더 값지고 많은 것들을 얻어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에 찬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수식어를 떠올리다 결국 선택한 것은 그냥 이 사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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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Apartment 5 (Image ⓒ Nils Holger Moormann) Berge의 곳곳에 있는 작지만 센스 넘치는 섬세함이다. 배관을 그대로 노출한 상태에서 액자에 유리를 달아 걸어 놓은 것이 재미있다. 많은 벽이 가공되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로 노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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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Sauna (Image ⓒ Nils Holger Moormann) berge의 숙소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자리 잡고 있는 사우나. 책과 자연과 사우나.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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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ge / 소품들 (Image ⓒ Nils Holger Moormann) 모든 객실과 주방, 욕실에 갖춰져 있는 각종 소품 역시 그릇과 컵부터 이불과 수건까지 모두 무어만과 NHM이 디자인한 것들이다. 판매도 하고 있어서 사용 후에 마음에 들면 실제로 구매할 수 있다.

무어만과 NHM의 Berge는 휴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와 숙소가 아닌가 한다. 환하게 웃는 무어만의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닮아 편안하고 알프스의 작은 독일 마을 아샤우를 닮아 평화롭다. 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Berge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에는 그간 내가 속했던 곳에서의 일상을 잠시 꺼두고 온전히 휴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Interview by Nils Holger Moormann 무어만이 이야기하는 자신과 디자인, 그리고 Berge에 대한 인터뷰를 공유하고 싶다. 40분가량의 긴 영상이지만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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