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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건축은 그리스 건축과 어떻게 다른가 [김신의 가구 이야기] ⑥

by 기타치는목수 posted May 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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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인류의 가구부터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구 디자인의 본질을 건축 역사와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현대 가구에서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소개한다. ​

 

 

지난 글에서 서양 건축과 디자인의 영원한 규범인 오더order *보에 해당하는 엔타블라처와 기둥에 해당하는 칼럼의 구성조합 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오더란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기둥과 보라는 구조에서 출발했다.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기둥과 보는 건물을 지탱하는 필연적인 구조다. 하지만 그런 오더가 건축이 아니라 가구에 적용될 때에는 장식이 돼버린다. 18세기 말 독일에서 제작한 르네상스 양식의 캐비닛을 보자.(아래 사진) 이 가구의 표면에는 분명한 오더가 표현되었다. 하지만 캐비닛은 면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기둥은 필요 없다. 마치 벽돌로 쌓아 올린 벽에 굳이 기둥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구조적으로 필연성이 없는 이 기둥은 장식이다. 이처럼 가구에 적용된 많은 오더가 구조가 아닌 장식으로서 표면에 조각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각적인 오더가 처음 나타난 것은 가구가 아니라 건축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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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스타일 캐비닛, 독일, 18세기 말. 엔타블라처의 맨 꼭대기인 코니스부터 칼럼의 마지막인 베이스까지 오더(order)가 정확히 표현되었다. ⓒböhringer friedrich 

 

 

로마 건축의 기원은 그리스에 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그리스 건축에 없는 것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아치arch다. 아치는 벽돌을 둥글게 쌓아 올려 만든 구조다. 둥글게 벽돌을 쌓아 올리다가 마지막으로 가운데 이맛돌keystone이 들어가면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 대단히 안전한 구조가 된다.(아래 사진) 매우 튼튼하다는 것이 장점으로서 아치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넓게 만들 수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건축 용어로 ‘스팬span’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건축 구조인 기둥과 보로는 스팬을 넓이는 데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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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 구조 (사진 출처.  www.churchofjesuschri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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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 그림: 마르티누스 뢰비예, 덴마크, 1843년.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인 스팬이 길지 않다. 

 

 

19세기 중반 파르테논 신전을 그린 그림을 보면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폭이 사람 키 정도밖에 안 된다.(위 사진) 무거운 돌로 만든 보는 나무 보보다 중력에 더 취약하므로 촘촘하게 기둥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선 열주가 고전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 되었다. 나무로 만드는 한옥 건축의 스팬은 이보다 훨씬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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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에 건설된 로마시대의 송수로.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폭이 길다. ⓒBenh LIEU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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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건설된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의 천장은 아치를 터널처럼 연장한 볼트, 즉 둥근 천정이다. ⓒMarcok

 

 

반면에 로마인들이 발전시킨 아치는 비록 돌로 만들지만, 하중에 굉장히 강한 구조로서 스팬을 넓게 만들 수 있다. 스팬이 넓어지면 그만큼 기둥의 숫자가 줄어들고, 그만큼 또 자재와 건설 비용을 아낄 수 있으므로 효율적이다. 따라서 대규모의 다리나 송수로(물을 보내는 수로)의 건설에 적합하다.(위 사진 중 첫 번째) 로마의 송수로는 긴 것은 무려 90킬로가 넘는 길이를 자랑한다. 아치가 아니라 기둥과 보의 구조로 이렇게 긴 구조물을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로마인들은 이 아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했다. 아치를 터널처럼 길게 만들어 볼트vault, 즉 둥근 지붕을 만들었다.(위 사진 중 두 번째) 아치를 360도로 회전시켜 엄청나게 큰 판테온의 돔dome 지붕도 만들었다.(아래 사진) 아치는 스팬이 길기 때문에 돔 지붕을 얹은 판테온의 내부 중앙은 기둥이 없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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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의 내부>, 그림: 지오반니 파올로 판니니, 1734년경

 

 

이토록 안정적이고 튼튼한 구조를 발전시켰으므로 로마 건축에서는 기둥과 보의 구조로 만들어지는 오더는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로마에서 오더는 쇠퇴했을까?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개선문을 보자.(아래 사진) 개선문은 아치가 세 개 있고, 기둥(아치 구조의 기둥은 ‘칼럼column’이라고 하지 않고 ‘피어pier’라고 부른다)이 네 개다. 이것만으로 개선문은 굳건하게 서 있다. 하지만 이 개선문의 표면에도 오더, 다시 말해 칼럼과 엔타블라처가 있다. 개선문의 진짜 기둥인 피어가 있는데, 여기에 굳이 또 다른 기둥인 칼럼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왜 기둥을 중복시켜 낭비할까? 이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개선문의 피어와 달리 피어 앞에 있는 칼럼은 진짜 구조가 아니다. 그저 아치 구조물에 부착한 장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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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개선문, 315년경. ⓒNikonZ7II 

 

 

또 다른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콜로세움을 보자.(아래 사진) 콜롬세움의 유명한 벽은 4층으로 쌓아 올렸다. 이 벽 역시 아치 구조로 튼튼하게 2천 년의 역사를 견뎌왔다. 이 아치 구조의 벽에도 개선문처럼 오더가 부착되어 있다. 이 오더의 칼럼과 엔타블라처 역시 장식이다. 사진을 보면 오른쪽 벽에는 오더가 없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관리가 잘 안 돼 사람들이 떼어간 것이다. 콜로세움의 오더는 실질적인 구조가 아니므로 칼럼과 엔타블라처를 떼어내도 건물은 붕괴되지 않고 여전히 튼튼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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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79-80년. ⓒFeaturedPics 

 

 

로마인들은 왜 아치 구조의 건물에도 굳이 구조적으로 필요 없는 오더를 적용했을까? 오더가 갖는 권위를 존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전 건축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오더가 없다면, 그 건물의 권위가 서질 않는다고 본 것이다. 마치 한옥 건축에서 궁궐이나 절에서는 일반 가옥과 달리 공포와 단청으로 화려하게 치장해 위엄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콜로세움에서도 오더가 제거된 벽면은 왠지 허전하거나 옷을 벗은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로마 건축에서 오더는 마치 임금만 입을 수 있는 용포처럼 복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로마시대에 들어와 오더는 완전히 형식화한 것이다. 

로마의 오더가 형식이 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필라스터pilaster, 즉 벽기둥이다. 필라스터는 칼럼을 모방해서 벽에 부조로 조각한 것이다.(아래 사진) 필라스터는 벽에 붙인 벽지나 다름없다. 기둥 모양의 납작한 벽지인 셈이다. 그리스 신전의 오더는 구조의 기능, 그리고 권위의 상징성을 모두 갖고 있다. 반면에 로마 건축의 오더는 구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상징성만 강조하고 있다. 하중을 떠받치는 의무로부터 해방된 오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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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내부의 필라스터(pilaster). ⓒC. Cornaglia 

 

 

이렇게 상징성만을 갖게 되자 사람들은 애초에 오더가 왜 필요했는지, 그 실질적인 용도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오더를 건설의 필요 조건이 아닌 예술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이에 따라 오더는 구성의 대상이 된다. 마치 네모, 세모, 동그라미 같은 기하학적 요소로 종이에 구성을 하듯이 오더를 다양한 구성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건축은 바로 오더를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가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된다. 이렇게 오더를 이용한 건축 디자인의 방식은 20세기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웨딩홀, 백화점, 은행, 미술관, 대학 본관, 모텔, 빌라, 그리고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의 입구 등의 건축물들이 오더를 무척 사랑한다. 그 방식은 대개 로마 건축처럼 형식적으로, 즉 장식의 요소로 벽에 부착하는 것이다.(아래 사진 중 왼쪽) 이 건물 꼭대기에 코니스(엔타블라처의 맨 윗부분으로 대개 건물의 꼭대기에 해당한다)가 앞으로 튀어 나와 있는데, 이것이 기능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칼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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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지방에 있는 한 모텔 벽에 부착한 오더는 로마 건축의 오더처럼 기능이 없는 장식이다. ⓒkshin
(오른쪽) 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 캐비닛 드로잉, 19세기.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렇게 건축에서 먼저 오더를 형식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가구도 그 길을 따라갔다. 테이블의 경우는 오더가 실질적인 구조처럼 적용된 사례다. 이와 달리 캐비닛에서는 로마 건축처럼 순전히 형식이자 장식, 예술적 수단으로 오더를 이용하고 있다.(위 사진 중 오른쪽) 캐비닛에서도 코니스와 칼럼은 아무런 기능적 요구가 없는 장식이다. 가구에 적용된 다양한 오더의 디자인은 바로크 양식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글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designpress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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